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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불공평해!" 인간의 비합리적 선택, '최후통첩 게임'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일까요? 경제학은 오랫동안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한다고 가정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을 돌아보면,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불공평함에 분노하거나 자존심을 지키려는 행동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비합리적' 면모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험 중 하나가 바로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입니다.
오늘은 행동경제학의 대표적인 실험이자 중요한 개념인 최후통첩 게임이 무엇인지, 이 게임의 결과가 전통 경제학의 예측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이 게임이 우리의 협상, 정의감, 그리고 공정성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설명해 주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최후통첩 게임이란 무엇인가?
최후통첩 게임은 두 명의 참가자가 돈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간단한 실험입니다.
(1) 게임 방식
- 참가자: 두 명 (제안자 A, 응답자 B)
- 게임 규칙:
- 제안자(A): 일정 금액 (예: 10,000원)을 받습니다. 제안자는 이 돈을 응답자(B)와 어떻게 나눌지 제안합니다. (예: A가 7,000원, B가 3,000원)
- 응답자(B): 제안자 A의 제안을 받습니다. 응답자는 이 제안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수 있습니다.
- 결과:
- 수락할 경우: 응답자가 제안을 수락하면, 제안대로 돈이 나뉩니다.
- 거절할 경우: 응답자가 제안을 거절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게임은 끝납니다.
겉보기에는 매우 단순한 게임이지만, 이 게임의 결과는 전통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이라는 가정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2. 전통 경제학의 예측 vs. 실제 실험 결과
(1) 전통 경제학의 예측 (합리적 인간 가정)
전통 경제학의 관점에서 '합리적인 인간(Homo Economicus)'이라면 다음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 응답자(B): B는 단 1원이라도 받는 것이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것보다 이득이므로, 제안자 A가 아무리 적은 금액(예: 1,000원)을 제안하더라도 무조건 수락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1,000원은 0원보다 크기 때문이죠.
- 제안자(A): B가 어떤 금액이든 수락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A는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B에게 최소한의 금액(예: 1원 또는 아주 작은 금액)만 제안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가질 것입니다.
즉, 전통 경제학은 제안자 A가 거의 모든 돈을 가져가고 응답자 B는 아주 적은 돈이라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2) 실제 실험 결과 (놀라운 비합리성)
하지만 전 세계에서 수없이 반복된 최후통첩 게임의 실제 실험 결과는 전통 경제학의 예측과 매우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 제안자의 제안: 대부분의 제안자는 자신이 60~70%를 갖고 응답자에게 30~40%를 제안합니다.
심지어 절반(50:50)에 가까운 공정한 제안이 가장 흔하게 나타납니다. - 응답자의 수락/거절: 응답자들은 자신이 받는 몫이 전체 금액의 20~30% 미만일 경우, 즉 제안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경우, 기꺼이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받는 것이 이득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인간이 단순히 자신의 금전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3. 왜 '불공평한 제안'을 거절할까?
최후통첩 게임의 실제 결과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복합적인 심리적 요인들을 드러냅니다.
(1) 공정성(Fairness)에 대한 강한 욕구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더라도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면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불공평한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불공정한 처사에 대한 응징'**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이득을 넘어선 사회적 가치(공정성)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2) 분노와 자존심 (Anger & Pride)
너무 불공평한 제안을 받았을 때 응답자는 강한 분노와 모욕감을 느낍니다. 이 분노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금전적 손실을 감수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너에게 이득을 줄 수는 없어!"라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죠. 이는 감정이 의사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3) 평판 및 사회적 규범 (Reputation & Social Norms)
비록 일회성 게임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사회적 규범의 영향을 받습니다. 너무 이기적인 제안을 수락할 경우 '호구'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나, 공정성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상대방에게 불공정한 행동의 대가가 있음을 알려주는 학습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4) 손실 회피 (Loss Aversion)의 간접적 영향
매몰 비용 오류와 유사하게, 손실 회피 심리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즉, 상대방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져가는 것이 응답자에게는 일종의 '손실' 또는 '불이익'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이를 회피하려는 심리가 거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4. 최후통첩 게임의 시사점과 현실 적용
최후통첩 게임은 단순히 흥미로운 실험을 넘어, 인간 행동을 이해하고 다양한 현실 문제에 통찰을 제공합니다.
- 협상과 거래:
- 공정성의 중요성: 비즈니스 협상이나 노사 협상에서 '공정성'은 단순한 도덕적 가치를 넘어,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임을 시사합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제안이라도 상대방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면 협상은 결렬될 수 있습니다.
- 마지막 제안의 중요성: '최후통첩'이라는 이름처럼 마지막 제안은 그 자체로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고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합니다.
- 법과 정의:
- 사법 시스템에서 피해 보상이나 합의금을 결정할 때, 단순히 경제적 손해를 메우는 것을 넘어 '정의가 구현되었다'는 피해자의 인식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 불공정한 법이나 제도가 국민의 저항에 부딪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 조직 관리 및 리더십:
- 성과 분배나 보상 체계를 설계할 때, 단순한 '절대량'보다 '상대적인 공정성'이 구성원들의 만족도와 동기 부여에 더 큰 영향을 미 미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 리더는 구성원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투명하고 공정한 의사결정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국제 관계:
- 국가 간의 자원 분배나 협력 프로젝트에서 불공정한 제안은 갈등을 심화시키고 협력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 합리적인 경제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국가 간의 자존심 싸움이나 외교적 마찰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최후통첩 게임은 인간이 단순히 합리적인 경제적 주체가 아니라, 감정, 사회적 규범, 공정성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진 복잡한 존재임을 행동경제학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이 게임은 우리가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고 자신의 의사결정을 할 때, 단순히 이득과 손실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공정성에 대한 갈망'을 함께 고려해야 함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최후통첩 게임에서 얼마를 제안하고, 얼마 이하의 제안을 거절하시겠습니까?